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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퇴사원 2020. 8. 23. 13:43

빌린 책인데 거의 1년 만에 다 읽었다... 친구야 미안하다. ^^;

생각할 거리 위주로 필기했다.

이 책을 보며 아들러심리학을 쬘~끔 알게 되었다. 

 


  • 트라우마란 존재하지 않는 것
  • 인간은 과거의 원인에 영향을 받아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한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

프로이트 사상에 의하면, '마음의 상처(트라우마)가 현재의 불행을 일으킨다'고 한다. 심리학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이 사상에 의지해 나를 돌아볼 때가 많았다. 나의 특정 행동(남들과 달라보이는)은 어떤 상처로부터 시작된 걸까? 같은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런데 아들러심리학에서는 트라우마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원인 때문에 이런 결과가 일어났다가 아니라, 원인(사건)은 원인일 뿐 지금의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의견이 조금 더 마음에 든다. 이게 더 능동적이기 때문이다. 원인에 의해 어떤 결과로밖에 도출될 수 없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기독교적 관점으로 봤을 때는 고난을 통해 더 성장하고 크게 쓰임받을 수 있다. 짧은 인생을 통해 이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확실히 믿는다. 

 

 

  • 인간은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랑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드는 배우자를 만나고 싶다.

 

  • A의 결점을 용서 못해서 싫어하는 것이 아닐세. 자네에게는 'A를 싫어한다'는 목적이 앞서고, 그 목적에 맞는 결점을 나중에 찾아낸 거니까.

이건 생각 좀 해보려고 적어놨다. 와. 그럼 내가 극혐하는 인간들, 전직장 상사, 전직장 사람들, 교회애들 몇명을 내가 싫어하기로 결정한 것? 이건 좀 억울하다. 나 사람 웬만하면 안 싫어하는데. 누구든지 공평하게 따뜻하게 대하는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고통스럽게 했기 때문에 싫어하게 된 건데. 만약 그 사람들이 내게 태도를 바꾸고 다가온다고 친다면, 저 위에 말이 성립이 될 수 있다. 내가 그들을 이미 싫어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나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저들을 싫어하게 된 계기는 그게 아니다...

 

  •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창작을 하려 할 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브랜딩을 하면서 나의 가치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뛰어난 매력이나 기술이 없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앞섰었다. 그러다 후반부에는 내가 가진 것들을 충분히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결론을 맺었다. 또한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 상황에 맞게, 그 지식을 잘 섞고 활용해서 보기 좋게 먹기 좋게 변형하는 것도 나만의 컨텐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도 그런가보다. 내가 가진 장점과 단점, 관심사와 약간의 능력을 잘 조합해서 나만의 다채로운 인생을 꾸며가는 것!

 

  •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

이 말은 많이 공감했다. 반대말은 '인정욕구는 부자유를 강요한다'이다. 맞다. 자유와 인정욕구는 아주 반대되는 말인 것 같다. 나는 그동안 인정받고 싶은 삶을 살았다. 난 20대 초반에 sns에 내가 느낀 생각, 배운 것, 깨달은 것들을 정리해서 종종 올렸다. 사소한 일상보다는 뭔가 힘을 준, 좀 멋있어보이고 철들어보이는 글을 쓰는데 관심 있었다. 그런 것들을 쓰면서 '어떻게 써야 많은 사람이 날 칭찬해줄까. 어떻게 써야 호불호가 적고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같은 생각을 했다. 그때는 그 감정이 인정욕구인 줄 몰랐다. 또 교회 언니들한테 칭찬을 듣고 싶어 했다. 그게 웬만큼은 효과도 있었다. 인정받으려 노력한 만큼 인정을 받았는데, 그렇게 점점 내 자유가 잠식당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점점 숨이 막히고 답답해졌다. 인정받기 위해 만들어낸 내 모습이 내가 견디기에 힘들었고, 자주 일탈을 꿈꿨다. 이게 여행으로 풀리는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난 자유로운 인생을 살기 원한다. 자유를 위해서는 인정욕구를 내려놓아야 했다. 안 저러던 애가 왜 저래? 욕먹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지만, 죄 안 짓고 남한테 피해 안 주면 된다는 생각으로 자유를 선택했다. 

 

  • 소속감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획득하는 것
  • '이 사람은 내게 무엇을 해줄까?'가 아니라 '내가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무언가를 주어야 내가 있을 곳을 얻는다.

공동체에 대한 부분도 언급되었다. 나는 '공동체'라는 단어를 사역할 때 정말정말 많이 썼다. 찬양팀 사역할 때. 이 부분을 그때 읽었다면 좀 달랐을까. 찬양팀 공동체는 사실 획득했다는 개념은 아니긴 하다. 약간 족쇄 같은... 들어갈 때는 어떤 문턱도 없이 들어간다. 그리고 공동체 일원이란 이유로 소속이 된다. 그리고... 뭔가 빠져나올 수 없는 일상 같은 존재가 된다. 그래서 공동체에게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거의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찬양팀은 예시로 좀 맞지 않는 것 같고. 앞으로 들어갈 공동체에 적용해볼 수 있겠다. 이제 서울에 가면 다양한 공동체를 만날 텐데, 내가 그 곳에 소속되기 위해서, 내가 뭘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봐야겠다. 아마 의식 안 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 같긴 하다. 

 

  • '지금, 여기'를 사는 것
  • 인생은 점으로 이루어진 선

내 인생이다. 어디서 들어본 멋진 말들.. 이 말들이 지금 내 인생하고 비슷하긴 한데. 모르겠다. 사실 이런 말을 보면서 위로와 힘을 얻기보다는 어딘가 싱겁단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사실 지금 내게 좀 더 자극이 가는 말은, 좀 더 세상적이고, 나와 반대되는 사람의 말인 것 같다. 그니까 난 지금 약간 비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고.. 뭔가 불안한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나를 처음보는 사람에게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나를 좋아할까? 싫어할까? 나는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 점을 찍고 있어서 그렇겠지? 아직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저 뚝뚝 끊어진 점밖에 없어서. 그래서 그렇겠지?